새롭게 태어나는 나이로비
인구 300만에 육박하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급성장하며 독특한 아프리카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케냐의 나이로비는 알쏭달쏭한 도시인지 모른다. 나는 10년 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낸 후 4년 전 귀국했다. 어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셨고, 타향살이에도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 적응하기는 힘들었다. 나는 나이로비 동부의 빈민가 믈랑고쿠브와의 변두리에 있는 '베벌리힐스'라는 싸구려 숙박소에 머물렀다. 그곳은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주로 묵는 곳이었다. 첫날 밤엔 홍수가 났는데, 일어나 보니 노트북 컴퓨터가 4cm 깊이의 물에 떠 다녔다. 나는 이 도시를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믈랑고쿠브와는 역동적인 곳이다. 사람들은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모색한다. 건물이든 법적 실체든 고정된 것이라곤 전혀 없어 보인다. 이곳에서 조직체는 일상의 자유로운 생활 속에 숨어 있다. 내게 새로운 나이로비를 접할 수 있도록 해 준 매시(마카리아의 별명)를 만난 곳은 베벌리힐스였다. 우리는 모이 가(街)를 함께 걷곤 했는데, 모이 가는 국제화된 나이로비 도심을 외곽과 이어 주는 길이다. 진일보하고 있는 이 도시는 무질서하게 팽창하고 있다. 사람들과 그들이 지은 소규모 불법주택은 우중충한 마천루에 면해 있다. 중고의류점과 무너질 듯한 채소 가판대도 있다. 목제 진열장 뒤에서 돌루오어(빅토리아 호 지역에 사는 루오족의 언어)로 소곤거리며 시계 수리 비용을 흥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행인들의 발에 눈을 고정시킨 채 일거리를 애걸하는 구두닦이와 구두수선공들도 있다. 그들은 허풍 같은 얘기를 늘어놓는데, 알고 보면 모두 사실이다. 매시는 20대 후반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부자였다. 아버지는 영어 문화권 속에 살면서 교육과 '페어플레이 정신'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서방세계, 곧 진보를 지향하라고 늘 말했다. 후에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다른 부인과 3명의 자녀가 난데없이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매시의 아버지는 20년 동안 딴살림을 차려 왔던 것이다. 나이로비 사람들은 복잡한 삶을 헤쳐 나가기 위해 이중 인격을 가지도록 배워 왔다.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들며 언어와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다. 매시는 여행사에서 고급 영어를 구사하며 근무한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믈랑고쿠브와의 비아샤라 가에서 술자리를 가지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철학이나 문학, 혹은 공식노동시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영어를 사용했다. 한편 일상생활, 즉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에 대해서는 스와힐리어로 이야기하며 일종의 형제애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스와힐리어로 말할 땐 항상 비꼬는 말투를 썼으며, 많이 웃고, 서로의 의견을 관대히 받아들이고 술도 더 권하며 호의를 전하곤 했다. 영어로 이야기할 땐 이렇게 못했다. 우리는 삶 전체를 이 두 언어의 간극에 숨긴다. 이건 바로 매시의 아버지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의 다른 가족을 숨기고 지낼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으로서, 다른 곳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살았던 것이다. 이런 일은 드문 게 아니다. 매시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지내면서 한 번에 수많은 일을 진행시키는 듯했다. 그는 작은 휴대전화 대리점에 출자를 했으며, 주말엔 때때로 시골에 가서 녹두를 구입해 나이로비에서 팔았다. 번 돈의 상당 부분은 변호사 비용으로 썼다. 그는 여러 친척들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재산을 회복하는 일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꼈다. 하루는 믈랑고쿠브와에서 매시의 활약상을 보게 되었다. 중고의류를 판매하는 여성들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였다. 그 여자들은 본드를 흡입해 눈이 풀린, 한 지저분한 젊은 도둑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그 도둑을 때려 죽일 태세였다. 경찰도 적으로 취급받는 나이로비에서 난동이 벌어질 때 나서서 일을 수습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시는 아주 능숙했다. 키쿠유어에 능통한 그는 그 언어를 사용했다. 키쿠유족은 '말 잘 하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한다. 유창한 말솜씨로 주의를 끌 뿐 아니라 사람들을 감화시킬 줄 아는 사람들을 말이다. 여자 상인들이 남자들에게 그 도둑을 막 넘기려 할 때, 매시는 그녀들에게 키쿠유어로 말했다. "마이투, 타 치아 아루메, 이시리 이리아. (남자는 젖을 물려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없다.)" 곤란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모르는 남자를 두고 말하는 속담이다. 여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30분쯤 지나자, 정부에서 임명한 이 지역 최고 관리에 의해 이 사건이 처리될 것이며 도난당한 물건도 돌려받을 거라는 확신이 들자 그녀들의 마음은 누그러졌다. 여자들은 매시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매시는 비옷을 공짜로 얻었다. 해질녘 매시와 나의 발걸음은 더 가벼워졌다. 변화가 일어나는 이 시간, 햇빛은 부드러워지고, 현란했던 도시는 잠잠해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벗어 버리는 이 순간은 마술 같다. 행상인들은 노점의 짐을 꾸린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해방되어 집으로 향하며 재잘댄다. 중국제 검정색 자전거를 탄 노동자들은 길을 비키라고 따르릉대며 집으로 간다. 사람들이 골목길에서 줄줄이 나타나 길을 막는 것들을 피해 돌아다닌다. 모이 가 남쪽으로 '마타투(소형버스)'들이 집결한다. 나이로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계획주택단지 중 하나인 '부루부루'로 가는 버스들이다. 마타투들은 광적이다. 마치 짹짹거리며 싸우는 열대조류들처럼 크게 경적을 울려 댄다. 버스의 둥근 앞판에는 노란 불이 깜박인다. 버스 앞부분 돌출부 주위는 형광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어둠 속 전조등은 눈을 번뜩인다. 마타투들은 비상등을 깜박이며 빵빵거린다. 귀가하려는 승객들을 앞다투어 태우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은 겉으로만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다. 마타투는 승객들이 차에 간신히 발끝을 디디고 문 밖에 매달릴 지경이 될 때까지 사람들을 가득 태운 후에야 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송가송가 마테, 송가송가!(아주머니 좀 더 들어가 봐요. 좀 더!)" 최신식 마타투에는 플라스마 화면이 있어 힙합 뮤직비디오를 틀어 준다. 돈을 벌기 위해 발빠르게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마타투는 나이로비 특유의 모습과 소리와 느낌을 지니게 되었다. 마타투 문화는 도시 곳곳에 새로운 언어를 전파했고, '성(Sheng)'이라는 언어를 유행시켰다. 급성장하고 있는 성어는 스와힐리어를 기본으로 영어와 다른 부족의 언어가 섞인 크리올어이다. 공중파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케냐 랩음악의 대부분은 성어로 부른다. 모이 가가 끝나는 곳에서 매시와 나는 나이로비 역에 도착했다. 19세기 말엽 철도가 건설되지 않았다면 이곳에 도시는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 10년 전, 난디족의 '오르코이요트(영적 지도자)'였던 킴뇰레는 철로 된 뱀과 함께 백인 부족이 도래할 것이고, 이는 모든 것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권력의 중심은 옛 마을로부터 '나이로비'라 불리는 이 기괴한 콘크리트 도시로 이동했다. 하지만 나이로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입증된 안정적 생활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시인이자 래퍼인 키투 수어는 우리가 처한 진퇴양난의 상황을 간파하고 "우메크와나 나미미 은다니 야 히지 마샤히리. (우리 모두는 전통적인 곡조에 갇혀 있다네.)"라고 노래한다. 전통 부족들의 세계관대로 살려고 하는 것. 철저하게 서구식 교육에 충실한 사람이 되려는 것. 여전히 새롭고 혼란스러운 개념인 '케냐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 이러한 시도들은 종종 실패하며 이러한 가운데 벌어지는 긴장은 나이로비를 가장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