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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사람들이 사는법

아프리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가 고향을 방문해 외딴 계곡과 마을, 도시를 돌아다니며 인간과 야생동물들 사이의 관계를 되짚어 본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도보여행 등산화는 세렌제에 있는 중고품 가게에서 미리 구입해 놓았다. 롤프 센턴이 거저 주는 거나 다름없는 가게에서 나일론 배낭을 하나 사 줬다. 그는 자연보호론자이며 기술자인 동시에 인기 있는 현지 정치인이다. 때로는 안내인 일도 한다. 다음 날 동틀 무렵,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잠비아의 대고원이었다. 그는 트럭을 몰고 고원 가장자리로 최대한 접근했다. 이곳에서 세상의 끄트머리는 안개 장막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커다란 음사사나무 줄기에 벰바족 말이 쓰여 있었다. '밀렵꾼들아, 더 늦기 전에 다 함께 모여 짐승을 싹쓸이하자.'라는 뜻이었다. 롤프가 새로운 일행을 소개했다. 그들은 조너선 음불라(잠비아야생동물국 감시원. 음불라는 벰바족 말로 비(rain)라는 뜻이다. '조너선 레인', 시의 첫 구절 같다.)와 펠레테 은소프와(밀렵 감시원으로 일하는 마을 주민. AK-47 소총이 부러진 날개처럼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선데이 핀칸사(전직 밀렵꾼)였다. 난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거의 뛰다시피 하며 서둘러 쫓아갔다. 잠비아 사람들과 야생동물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내 처지를 적절히 암시하는 모습인 듯했다. 그 관계는 머리가 여럿 달린 히드라였다. 예를 들어, 코끼리에 대한 생각은 그 동물에 관한 경험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코끼리는 망원렌즈를 통해, 또는 밀릿밭에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매주 먹는 스튜 속에서 만날 수도 있다. 야생동물 관련법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가졌던 남자들과 함께 루앙과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은 만족스러운 출발인 듯했다. 약 700km 길이에 최대 폭이 90km에 이르는 루앙과 계곡은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맨 끝으로, 야생동물이 풍부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은 실제보다 더욱 신비롭고 외지다는 느낌을 준다. 건기에도 차량으로 돌아다니기 어렵고 우기에는 사실상 어떤 방법으로도 지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이유 중 하나다. 국립공원 네 곳(북루앙과, 남루앙과, 루쿠수지, 루암베)과 관리사냥구역(GMA)이 계곡과 그 인근에 있다. (GMA는 공원과 그 밖의 지역 사이에 있는 완충지대이며 이곳에서는 사냥과 주거, 농사가 허용된다.) 계곡으로 내려가기 위해 가파른 비탈로 발을 들여놓기 직전 마지막으로 고원을 쳐다보았다. 고원과 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어릴 적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롤프의 트럭 엔진이 부르릉거리는 소리가 저 멀리 사라져 갔다. 그러고는 고요가 찾아왔다. 너무나 조용한 나머지 머릿속에서 윙윙 대는 소리가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벌레 소리인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먹은 말라리아 약 때문에 들리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타고난 밀렵꾼, 선데이 핀칸사 선데이는 우리 일행을 이끌고 계곡을 향해 비탈을 내려갔다. 그는 아래를 보지도 않고 걸었다. 이 계곡을 샅샅이 훑으면서 (불법으로) 사냥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밤에 화장실 가는 길을 아는 것처럼 그곳을 훤히 알고 있다. 그는 44세이고 얼굴은 화강암 같다. 그의 발 아래로 내려가면 땅과 직접 연결된 부분이 나올 것 같다. 그리고 생사를 넘나드는 생활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를 지니고 있다. 그는 10년 전 감시원에게 머리를 걷어 차여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모르는 감각을 사용하여 청각 장애를 보완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잠시 멈췄을 때 조너선과 펠레테의 도움을 받으며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벰바족 언어(선데이의 모국어)와 영어(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언어)를 포함해 몇 가지 언어를 잘 구사한다. 선데이는 자신의 외삼촌인 살라모 마을의 사일리 씨의 권유로 1981년 밀렵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내가 자신의 외삼촌을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데이는 20년 동안 밀렵꾼으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동물을 죽였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수천 마리쯤 될까요." 결국 그가 시인했다. 통역상 문제가 좀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982년 남자 형제가 사냥하는 것을 돕던 선데이는 코뿔소를 죽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감시원이 우릴 발견했죠." 그가 설명했다. "형제는 도망갔어요. 나요? 태양 아래 혼자 남아 있었죠." 선데이는 음피카 감옥에서 3년을 보냈다. "3년 내내 죽도록 일만 했죠. 3년 내내 새우잠을 잤어요. 3년 동안 재미라곤 전혀 없었어요. 처음 들어가면 다른 죄수들이 말하죠. '선배님들에게 신고!' 땅바닥에 누워 먼지 속을 구르며 그들에게 존칭을 붙여야 하죠. 그들은 사흘 동안 두들겨 패고 굶긴 다음 왜 이곳에 들어왔냐고 물었어요. 밀렵꾼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좋은 음식'이라고 말합디다. 그들은 나를 브와나라고 부르고는 존경심을 가지고 대했죠. 내가 정부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사람이라나요. 하지만 쉬운 생활은 아니에요." "그러고 나서 밀렵을 그만두었나요?" 내가 물었다. "아뇨. 나에게 밀렵은 유전병과 같아요." 1986년 선데이는 다시 코뿔소를 죽여 그 뿔을 은돌라에서 팔았다. 세네갈에서 온 사람이 800달러를 주고 뿔을 샀다. 돈은 함께 사냥한 식구들과 나눠 가졌다. 선데이는 자기 몫으로 염소와 돼지 몇 마리, 자전거, 고무장화를 구입하고 2주일 동안 술에 절어 지냈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4년 전 선데이는 자연보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음품바 추장의 설득으로 밀렵을 그만뒀다. 하지만 아들들은 밀렵업계에 계속 머물렀다. 그러던 중 큰아들이 감시원에게 살해되었다. "남루앙과 공원에서 총에 맞아 죽었어요." 선데이가 말했다. "다른 애는 운이 좋았죠. 다리에만 총상을 입었거든요. 그 애가 사흘 동안 걸어 나를 찾아와서는 '찰스가 죽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난 공원으로 들어가서 감시원이 아들을 죽인 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뼈 몇 개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어요. 남아 있는 건 그게 전부였죠." 선데이가 아들 얘기를 끝내자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강인한 남자의 먼저 간 자식에 대해 해 줄 말이나 행동은 없는 듯했다. 조너선이 한숨을 쉬며 일어나더니 책을 꾸리기 시작했다(그는 계곡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학명을 독학으로 익히고 있었다.). "자, 이봐요, 백인 양반." 그가 내게 말했다. "진짜로 한번 걸어 보세요. 지금까지는 한 걸음에 열다섯 마디씩 했죠? 이젠 잠비아 사람처럼 걷는 겁니다." 전갈 그리고 캠핑 그 날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였다. 전갈이 펠레테 은소프와의 손을 두 번이나 쏘았다. 그렇게 쏘이면 어른도 이틀 동안 비명을 지를 정도로 통증이 심하지만, 펠레테는 소리만 약간 지르고는 내가 준 아스피린을 먹었다. 선데이도 아스피린을 달라고 했다. "어디 아파요?" 내가 물었다. "아뇨." 선데이가 아스피린을 삼키며 대답했다. 우리는 전갈에 쏘이는 사고를 막기 위해 땅바닥에 방수포를 깔았다. 그러고는 모닥불 주변에 누워 검붉은 하늘 아래서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나눴다. 조너선이 막내 동생 얘기를 들려 주었다. 동생은 지난 시즌 초 밀렵 감시단을 이끌고 풀이 무성한 초원을 걸어가다 검은맘마뱀과 마주쳤다. 그는 뱀에게 얼굴을 물렸고 세 시간 뒤에 죽었다. 그만큼 조너선의 동생은 강했다. (오래전 몸바사에 있는 뱀 농장에서 들은 얘기가 하나 있다. 케냐에서는 검은맘마뱀이 '두 발자국 뱀'으로 알려져 있다. 검은맘마뱀에게 물리면 두 발자국을 내딛는 사이에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나요? 이 일에는 사고가 많아요." 조너선이 장작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파, 파, 파." 담배 연기를 모닥불 쪽으로 부드럽게 내뿜으며 그가 말했다. "심장이 이렇게 뛰어 본 적 있어요?" "있어요." 내가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겨울밤 숲 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그날 밤 꿈자리가 사나웠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근처 습지대의 차가운 습기가 우리 캠프 쪽으로 몰려와 있었다. 미옴보 산림지대는 대성당처럼 고요했다. 풀에 맺힌 이슬이 탁탁 마르는 소리를 방해하는 건 남방땅코뿔새 울음소리(깊은 우물 속으로 돌멩이가 떨어질 때 나는 소리 같다.)와 서서히 사그라지는 흑백뻐꾸기의 맑은 울음소리뿐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의 중심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틀만 걸어가면 루앙과 계곡 서쪽 끝에 있는 음피카 시의 떠들썩한 문명세계(푸카푸카 나이트클럽과 디서플린 레스토랑)가 나왔고, 이삼 일 정도 걸어가면 계곡 동쪽 끝에 있는 음푸웨 시가 보였다(프라이데이스 나이트클럽의 바 위에는 '신이시여, 형제를 받아 주소서, 편히 잠들기를.'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이곳의 하루 숙박료는 3달러이며 창녀를 부르려면 1달러를 (혹은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 침낭을 비집고 나오면서 보니, 조너선은 벌써 일어나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사람의 자족감이 느껴졌다. "춥네요." 그에게 벰바족 말로 작게 얘기했다. 조너선이 장작으로 자기 옆을 톡톡 두드렸다. 그래서 나는 미라처럼 잠들어 있는 우리 일행을 조심스레 넘어 모닥불 쪽으로 갔다. 우리는 손을 뻗어 불을 쪼이며 앉아 있었다. 그의 담요를 어깨 위로 함께 두른 채 찻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오지를 며칠 동안 돌아다닌 대가 치풍웨 감시원 캠프에 있는 여인들이 숲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는 아이에게 거울을 하나 가져오게 했다. 18세기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그녀들은 끔찍한 내 몰골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러고 나서 뜨거운 물 한 양동이와 차, 빗을 갖다 주었다. 그곳에서 롤프를 만났다. 그는 차축이 부러질 것 같은 길을 타고 비탈을 내려와 이곳에 도착했다. 그 날 밤 나는 마을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강으로 물을 길러 내려가는 여인들의 수다 소리에 잠을 깼다. 여러 새가 한꺼번에 지저귀는 바람에 울음소리를 분간할 수 없었다. 모파니 잎 냄새와 장작 연기 냄새, 짐승 똥 냄새, 강에서 나는 강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세상은 생명으로 가득했다. 벌에 쏘인 데 바르는 태운 꿀의 냄새가 어떤지, 커다란 코끼리 앞에서 얼마나 작게 느껴지는지 글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성난 개코원숭이 무리에게 쫓기는 표범처럼 짐승들도 우리같이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난 하나의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난 이런 깨달음을 통해 자연의 일부가 된다. 보통 속세를 등지고 심신을 연마하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깨달음이지만. 무더운 오후, 두꺼운 책 속세의 때를 벗으려고 책을 하나 들었지만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간다. 그 책은 W. L. 애슬이 쓴 방대한 저서 '잠비아 루앙과 계곡 중부의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 역사(1999년 8월 대영연방박물관 발행)'다. 서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 책은 유럽인이 침투하기 시작한 18세기 말부터 상업적인 밀렵의 학살이 시작됐던 1970년대 초까지 … 기록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빠뜨린 이야기 모든 것이 일정표에 기록된 것처럼 진행되진 않았다. 우리는 루쿠사시 강 강둑에서 오도 가도 못했다. 강물은 엄청 깊었고 바지선은 짐을 잔뜩 실은 자전거보다 훨씬 더 위태로워 보였다. 온 길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강기슭을 걸어 내려가는데, 자동차 안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인도인 세 명이 눈에 띄었다. 롤프를 알고 있는 그들은 우리를 도와 주려고 했다. "절대로 지금 강을 건너면 안 돼요. 이틀 정도 우리와 함께 야영을 한 다음 어떻게든 해 보세요." 며칠 전 이곳에서 감시원들이 식인 악어 한 마리를 잡은 적이 있다고 람보처럼 생긴 젊은이가 말했다. 녀석의 뱃속에서 옷과 사람의 유해가 나왔다고 했다. "그때 계셨으면 좋았을 것을." 람보의 삼촌이 말했다. "훌륭한 기삿거리가 됐을 겁니다." 당신이 구한 생명이 자신의 생명일지 모른다 인도인들과 헤어진 다음 온몸이 땀과 먼지에 절어 포장도로로 나왔을 때는 날이 어둑어둑했다. 우리는 음판샤 근처에 있는 루가 선교병원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다음 날 아침, 인상 좋은 폴란드인 선교사가 아침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삶은 계란과 차, 토스트를 갖다 줬다. 그녀는 자신의 환자 한 명이 간밤에 죽었다고 얘기했다. 아침을 먹는 동안 롤프(그는 살을 에는 듯이 추운 남반구의 겨울밤 때문에 폐렴에 걸렸다.)를 진찰한 그녀는 그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에이즈 병동을 보여 주었다. 시큼하고 들큼한 죽음의 냄새가 가득했다. 환자들은 피부의 물집을 만져 보고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아 주고 입술을 적셔 주는 그녀를 물끄러미 지켜 봤다. 만약 내 몸이 썩어 들어가면 마르가레트 스트젤레카 선교사가 내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마뱀붙이가 한밤중에 자기 위로 떨어지는 건 질색을 했다. 치료 세렌제에 도착하기 직전, 롤프는 전통 약을 파는 치료사를 소개시켜 주었다. 털이 많고 둥근 덩이줄기(아프리카 감자)더미 앞에 '에이즈 치료용'이라고 쓰인 빛 바랜 표지가 보였다. '그리고 강력한 뿌리 두 가지'라고 적힌 또 다른 표지 뒤에는 말린 사탕수수처럼 생긴 정체 모를 나무껍질더미가 놓여 있었다. 다른 질병에 사용하는 강장제라는 것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만취한 치료사는 우리와 다른 세상에 불안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는 롤프의 주머니칼을 빌려 덩이줄기를 자르다가 손을 베었다. (과육은 핏빛을 띤 오렌지색이며 얌보다 단단하다.) 그는 미키마우스 운동복 위에 더러운 흰색 의사 가운을 걸치고 낡은 가죽구두를 신고 있었다. '난 에이즈를 압니다. 당신은 어떤가요?'라는 문구가 적힌 스마일 배지가 가운에 붙어 있었다. "내 약의 문제는 이런 겁니다." (입가에 침이 하얗게 고여 있는) 치료사가 말했다. "병이 나은 사람은 몸이 좋아지죠. 그런데 이 사람이 밖으로 나가면 또 감염돼 결국은 죽어요. 사람들은 말하죠. '당신의 치료는 효과가 없어.'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치료사는 우리에게 흰색 가루를 주면서 먹어 보라고 했다. "강력한 뿌리 두 가지죠." 그는 말했다. 퀴닌 맛이 났다. "폐렴에도 들을까?" 롤프가 가루를 핥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담배 끊는 약을 달라고 했다. "아, 그건 너무 어려워요." 치료사가 말했다. "눈깔사탕을 한번 드셔 보시지 그래." 자연보호론자가 된 추장 대부분의 잠비아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물과 음식, 연료를 아낀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풍족해 보이는 것만 낭비를 한다. 그래서 해마다 7월이나 8월이면 나라 전체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 같다. 밀렵꾼, 쥐를 잡으려는 아이들, 연기로 벌을 쫓아내는 '꿀 사냥꾼' 때문에 우연히 화재가 발생한다. 하지만 건기에 타오르는 숲의 면적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봐야 분명히 알 수 있다. 잠비아 시골의 개미언덕에 올라서면 나무와 초원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걸어서 하루나 이틀이 걸리는 거리까지는 숲이 계속 펼쳐진다. 롤프는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추장을 대했다. 나도 비슷한 방식으로 예를 갖춰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막상 차례가 되자 팔로 무릎을 감싼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훌륭한 교육을 받아 예의가 바른 추장은 그런 나의 행동을 못 본 척했다. 음품바 추장의 관할구역은 루앙과 계곡의 서쪽 끝 중심부에 펼쳐져 있다. 수목으로 뒤덮인 넘실거리는 초원지대가 끝나는 곳이다. 지금은 동물이 살고 있지 않지만 동물에 대한 추억과 희망을 버리지 못한 곳이기도 하다. 음품바 추장은 자신의 땅 8485km2 중에서 3만ha를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했고 자연을 보호하려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협회를 만들었다. 회원 대부분은 그의 부하인 선데이 핀칸사처럼 전직 밀렵꾼이다. 우리는 추장이 살고 있는 집의 베란다에서 달콤한 차를 마시고 갓 구운 빵을 먹으며 야생동물이 뛰노는 풍경을 상상했다. 마을 여인들 몇 명이 추장 집의 뜰로 들어와 물을 길었다. 닭 몇 마리가 모래로 목욕을 했다. 여느 때보다 100배는 커진 해가 지평선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롤프는 나중에 추장의 관대함에 대해 말해 줬다. 추장은 차를 내놓을 때마다 새 잔에 새 티백을 넣어 우리에게 대접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지 않았으면, 내가 석 잔의 차를 마셨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추장은 그 일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선데이의 외삼촌 롤프는 선데이 핀칸사의 외삼촌이 살고 있는 집에 나를 데려다 주었다. 살라모 마을의 사일리 씨는 왕년에 밀렵꾼의 대부였다. 올해 73세인 그는 가짜 롤렉스를 찬 사람처럼 거들먹거렸다.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의 잔재인 트럭은 집 뒤에 있는 목재 위에 처박혀 있었다. 그는 현재 음품바 추장의 자연보호협회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빛 바랜 영광과 부정으로 점철된 시절의 흔적, 그리고 인생의 비극이 서려 있었다. 그는 12명의 자식 중 5명을 잃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고아 8명을 키우고 있다. 그는 야생동물 고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지." 그가 말했다. "밀렵꾼은 날 보고 도망을 가고. 내가 그 세계에서 손 뗀 걸 알고 있으니까." 성냥과 콘돔, 비누 등을 파는 가판대 근처에 쿠두 엉덩이 고기가 보였다. 난투극이 벌어졌다. 한 남자가 우리에게 주먹을 흔들며 소리쳤다. "야, 이 멍청한 것들아!" 밀렵의 정치학 1970년 아프리카에서 코끼리와 코뿔소가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지역 중 하나가 루앙과 계곡이었다. 당시 가장 믿을 만한 추산에 따르면, 코끼리는 9만 마리, 코뿔소는 8000마리였다. 1980년대 중반, 계곡 전역에 살고 있는 코끼리는 밀렵 때문에 1만 5000마리 정도로 줄어들었고 코뿔소는 소문에만 등장했다. 북루앙과 공원에서만 한 해에 1000마리의 코끼리가 도살됐다. 사방은 코끼리 사체로 뒤덮였다. 밀렵꾼은 대규모 고기 건조대를 갖춘 캠프를 사용했다. (당시 잠비아 정부의 부패 관리가 밀렵꾼을 후원하기도 했다.) 주변 마을에 사는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몇 주 동안 짐꾼으로 뼈 빠지게 일하고 1kg도 안 되는 고기를 받았다. 마크 오웬과 델리아 오웬 부부가 사자를 연구하기 위해 북루앙과 국립공원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야생동물보호구역이라기보다는 전쟁터에 더 가까웠다. 공원을 복원하는 길은 밀렵 감시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을 확보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오웬 부부는 무쿵굴레 추장과 그의 주민을 설득해 밀렵과 짐꾼 사업을 소규모 사업체(오웬 부부가 재정 지원과 기술 훈련을 맡았다.)로 대체하게 했다. 1990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무역 협정으로 상아 무역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코끼리 수는 회복되기 시작해 현재는 공원 경계선을 넘어설 정도로 늘어났다. 주민들은 밤에 농작물을 휩쓸어 버리는 코끼리 때문에 징을 울리거나 칠레고추를 심어 울타리를 만든다. 1996년 오웬 부부는 잠비아를 떠났지만 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던 프랑크푸르트 동물학회는 북루앙과 국립공원과 인근 공유지에서 자연보호 활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오웬 부부의 제자인 해머 심윙가는 마을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합동작업의 성공으로 코끼리는 지속적으로 보호됐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검은코뿔소 다섯 마리가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북루앙과 공원의 보호계획과 그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자율활동이 잠비아 전역에서 환영을 받지는 않았다. 쫓겨난 밀렵꾼과 부패한 공무원, 일부 현지 관광업체는 제각기 다른 이유로 공원 보호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잠비아는 아프리카에서 경제침체가 가장 심한 곳 중 하나다. 그래서 불법 상아든 합법적인 사냥이나 관광이든, 야생동물로부터 얻는 수입의 원천은 우선적으로 보호되는 상품이며 현지 사업가들이 외국인과 나눠 갖기 싫어하는 상품이다. 잠비아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오웬 부부의 이름을 언급하면 그 부부에 대한 소문을 듣게 마련이다. 오웬 부부의 일에 대한 오해와 외국인에 대한 불신, 넉넉한 자금에 대한 시기에서 그런 뜬소문이 비롯되었다. (밀렵 반대 운동에 대한 그릇된 이야기에서부터 사생활에 대한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의 소문도 입증할 수 없었던 나는 오웬 부부의 일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이 있다는 사람을 인터뷰했다. 무쿵굴레 주민의 대변인인 무쿵굴레 추장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오웬 부부가 1996년 마지막으로 그의 전임자를 만났던 곳과 같은 장소에 있다. 나를 만나는 날 그는 페도라에 줄무늬 양복(낡아서 초록빛이 도는 검정색)을 점잖게 차려 입었다. 그의 얼굴에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는 지친 듯 짧게 말했다. 앞으로 다가올 기나긴 건기를 위해 힘을 비축하는 듯했다. "지금은 나아졌습니다." 그가 간단히 말했다. "밀렵하던 시절은 지나갔지요." 오웬 부부 얘기를 꺼내자 그는 결연해졌다. "마크는 이곳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마크와 델리아가 없는 이곳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들은 일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그는 단호히 말했다. 질투는 독약 '질투는 독약 식료품점'이라는 가게 간판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질투의 막연한 속성을 명백히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질투는 잠비아 사회의 모든 영역에 널리 퍼져 있다. 또한 잠비아에 사는 외국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한 가지 특성, 때로는 유일한 특성이다. 레이철 루앙과 강에 반사된 황금빛이 얼굴에 비치던 어느 무더운 날 오후. 사파리 캠프에서 남루앙과 자연보호협회 회장 레이철 맥로브를 인터뷰했다. 그녀는 상냥하고 활기찬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그녀는 경험이 많고(그녀는 상처 입은 코끼리를 쫓아가 녀석에게 쏜살같이 달려든다.) 열성적인(그녀는 이 일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룬다고 말했다.) 것 같다. 그녀의 손은 아주 거칠다. 루앙과 계곡의 코끼리 밀렵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그녀는 말한다. (2004년에 도살된 코끼리는 그녀가 아는 것만 30마리가 넘는다.) 최근에는 사파리 캠프 부근에서 수놈 두 마리가 죽었다. 계곡에서 상아 사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그녀는 감시원 17명과 자동차 두 대, 배 한 척, 그리고 굳은 결의로 무장하여 밀렵과 싸우고 있다.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 그녀의 말을 가로막는다. "감시원이 더 필요한가요? 밤에 화장실 가는 길을 아는 것처럼 계곡에 훤한 사람을 한 명 알고 있거든요." 루사카와 야생동물 고기 이 도시는 마약에 중독된 것 같다. 호텔 정원은 새들로 가득하고 안뜰 연못에는 악어가 있었다. 카이로 거리 양쪽 끝의 분수에서는 깨끗한 물이 넘쳐 흐르고, 길거리 아이들의 눈빛은 정상이 아니었다. (본드나 휘발유를 마실 형편이 되는 아이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사람의 오물을 비닐봉지에 넣어 일주일 정도 발효시켜 만드는 환각성 가스인 '젠켐'을 마신다.) 난 프레드(그는 주방에서 불법적인 것을 다루므로 이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세상 물정에 밝은 타고난 수완가다. '니아마'라는 말과 관련된 루사카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며 그를 고용했다. 니아마는 야생동물과 야생동물 고기를 의미하는 말이다. 프레드의 야생동물 경험이라곤 코끼리 스튜와 칠랑가에 있는 문다왕가 야생동물공원에서 보낸 오후가 전부라는 사실을 알았어야만 했다. "싸고 더 맛있고 냉장고가 없어도 돼요." 그가 말했다. 프레드와 그가 아는 사람들 절반은 일주일에 많게는 네 번 정도 야생동물 고기를 먹는다. "게다가 말이죠." 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정력에도 좋아요." 그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그가 덧붙였다. "물소와 코끼리가 최고죠." 불법으로 야생동물을 취득한 것이 발각되면 5년 동안 감방 신세를 질 수도 있으며 잠비아의 교도소 환경을 감안하면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 프레드는 웃었다.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야생동물 고기를 먹는 건 일상생활이에요." 그가 말했다. 요즘은 야생동물 고기를 여행가방에 넣어서 믿을 만한 고객의 집으로 찾아가 몰래 판매한다고 그는 말했다. 상아도 비슷하게 팔린다. 프레드의 빨간 소형차를 타고 도시 변두리를 빠르게 달리며 우리는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잠비아의 길거리 경제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통 치료사가 매끈한 병에 담긴 요란한 약을 팔고 있었고 숯장수들은 숯자루에 몸을 기대고 있었으며 돌을 파는 사람들은 흰색 자갈을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리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프레드가 말했다. "보세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일거리만 있으면 뭐든 하죠. 무슨 대안이 있겠어요?" 다시 만난 선데이 핀칸사 와이오밍 주의 산들이 내다 보이는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아프리카에 관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내 조국에 둘러싸여 있는 기분이다. 잠비아 공화국 지도로 가린 창문 위에는 '질투는 독약 식료품점' 사진과 술에 취한 전통 치료사의 사진, 그리고 우리가 치풍웨 캠프에 도착한 다음 날 전직 밀렵꾼, 감시원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발 아래에는 개들이 있고 책상 위에 있는 주전자에서는 아프리카 차가 끓고 있다. 이메일을 확인해 보니 다음과 같은 편지가 와 있다. "우리는 늘 그렇듯이 전쟁 중이에요." 레이철 맥로브가 보낸 메일이다. (이곳에는 벌써 눈이 내리려 하고 있지만, 잠비아는 찌는 듯한 더위에 축 늘어져 있다.) 그녀는 말한다. "그 사람들은 정말 일을 잘하고 있어요. 선데이 핀칸사와 음피카 출신 두 명을 고용했는데, 순찰 나간 첫날 밀렵꾼을 체포해 왔더군요." 내가 기뻐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개들이 뭘 잘못한 줄 알고 깜짝 놀란다. 컴퓨터 위로 고개를 들어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본다. 난 선데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고 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디밀고 있다. 그의 고무장화 위로 단추를 반만 잠근 실내복이 보인다.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그 땅에 속해 있는 것 같다. "잠비아 사람처럼 걸어 보시게나. 이 양반아." 내가 그에게 말한다. 그는 분명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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