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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니언랜즈 국립공원

글 : 마이크 에드워즈 사진 : 프랜스 랜팅

미국 서부에 방대하게 펼쳐져 있는 암석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미국 콜로라도 고원의 오지는 시간이 거의 멈춘 것처럼 보인다. 해마다 침식작용이 메사(꼭대기는 평탄하고 주위는 급사면을 이루는 지형)를 조금씩 깎아내고 계곡을 더 깊게 파낸다. 비가 많이 내린 해에는 드문드문한 풀이 무성해지고 건조했던 해에는 풀이 시든다. 그러나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 주에 걸쳐 광대하게 펼쳐진 이 울긋불긋한 암석의 바다는 미국 초기의 서부 개척자들과 스페인 정복자들, 그리고 최초의 유럽 이민자들이 이 신대륙에 오기 전과 비교해도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의 척도를 인간의 시간에서 지질학적 시간으로 생각해보면 이 층층이 주름 잡힌 암석들이 펼쳐놓은 역사는 미미한 변화가 아닌 수십억 년에 걸친 거대한 변화가 된다. 지질학자들은 아주 미미한 힘이 모여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는 ‘장구한 시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은 장구한 시간이 만들어놓은 지질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콜로라도 고원은 오랜 세월 동안 사암, 석회암, 이암, 혈암이 겹겹이 쌓인 샌드위치가 되었다. 바다, 강, 바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운반해온 이런 지층들은 격렬한 지각변동으로 융기되고 가라앉고 뒤틀렸다. 화산이 지층 위에 용암을 끼얹었고 바람과 물이 깎아낸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뚜렷한 지층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지질학자들은 100여 년 전에 이 계곡들과 메사에 있는 수십 개의 지층을 탐사하고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윈게이트, 서머빌, 그리고 가장 두껍고 가장 긴 지층 중 하나인 나바호 사암층 등. 약 1억 8000만 년 전에 형성된 나바호는 1500만 년에 걸쳐 바람이 실어온 모래가 쌓이면서 사암층을 이루었다. 나바호의 지층 중에는 두께가 600m인 것도 있으며 색깔도 산화철로 인해 옅은 분홍색에서 짙은 주황색까지 다양하다.
그 많은 모래가 어디서 왔을까? 대부분은 분명 동쪽 끝에 있는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왔을 것이다. 지질학자 제프리 랄과 그의 동료들은 사암에 박혀 있는 작은 지르콘 결정체에서 모래의 출처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나바호 지르콘의 방사성 동위원소가 한때는 알프스 산맥만큼이나 높았던 애팔래치아 산맥의 지르콘과 일치하는 것이다.
아마 산맥 봉우리에서 침식된 모래가 강물에 쓸려 서쪽으로 운반되고 바람에 날려 환상적인 모래더미를 형성했을 것이다. 당시 북아메리카의 고원지대는 지금의 멕시코 중부 지방쯤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일년에 몇 밀리미터씩 북쪽으로 천천히 이동해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나바호 사암층에서 생명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약 1억 6000만 년 전 무렵 쥐라기 말기에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숲, 강, 늪, 내해 등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 가운데 공룡과 악어, 그리고 바다에서 산란하는 거대한 도마뱀과 대형 상어들이 번성했던 것이다. 이런 거대한 동물들의 화석이 진흙과 탄산염 같은 퇴적물로 형성된 모리슨, 시더마운틴, 다코타, 맨코스, 카이파로위츠의 지층에 점점이 박혀 있다.
유타 주 그랜드스테어케이스 에스컬랜티 국립기념지 도로 옆에 있는 작은 협곡은 메마른 사막이 생명이 번성한 쥐라기 말기와 백악기의 물기 있는 환경으로 바뀌는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사암 위에는 얇은 석탄층이 있어 늪지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진흙과 섞여 압착된 모래층은 해안선이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모래층 위에는 ‘굴층’이 있는데 이는 해안선이 바뀌면서 만을 형성할 때 생겼다. 굴층에는 화석진주가 풍부하다고 한다.

지질학적 흔적과 비교해볼 때 근래에 인간이 콜로라도 고원에 남긴 흔적은 정말 미미해 보인다. 불과 100년 전에 있었던 몇몇 가장 인상적인 인간의 활동도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 예가 약 250명의 남녀로 이루어진 모르몬교 집단으로 이들은 1879~1880년 눈이 많이 오던 겨울, 유타 주 동남부 지역으로 힘겨운 이주를 하면서 높은 산등성이를 따라 길을 냈다.
그들은 로프와 체인을 이용해 콜로라도 강 위쪽에서 자신들이 ‘홀인더록’이라 명명한 아주 좁은 바위틈 사이로 83대의 마차를 밑으로 내렸다. 그러고는 마차와 가축을 몰고 550m 아래로 내려와 90m 너비의 꽁꽁 언 강을 건넜으며 강 맞은편에 있는 높은 절벽을 또 넘어야 했다. 그들은 거의 6개월에 걸친 험난한 여정 중에 마차 한 대도 잃지 않았고 세 명의 아기가 태어나면서 오히려 인원이 더 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사막에서 농사를 짓고 목장을 일구는 더 어려운 시절을 겪어야 했다. 오늘날 개척자들이 고원지대에 세운 마을 중 일부는 사라졌고 일부는 쇠락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몇 년간 콜로라도 고원의 험악한 암석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핵무기 제조와 원자력발전소의 연료로 필요한 카르노광, 역청 우라늄광, 우라늄 원광의 광맥이 암층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라늄 광산업자들 중 일부는 부자가 되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의 광산업자들은 1970년대에 절정이었던 우라늄 수요가 점점 줄자 이곳을 떠났다.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들, 이따금 보이는 녹슨 트럭, 약한 방사능을 띤 광물 쓰레기가 우라늄 채굴의 흔적을 보여주는 쓸쓸한 증거로 남아 있다.
인디언들도 사람에게 겁을 주는 암벽화 등의 흔적을 남겼다. 사암벽 옆을 지나는 등산객은 따가운 시선을 느낀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면 황톳빛이 도는 붉은 색으로 벽에 그린 파수꾼 같은 인물이 보인다. 한 명이 아니다. “여기서 뭐 하시나? 우리가 먼저 이곳에 왔다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실물보다 더 큰 경우도 있는 이런 인물화들은 유타 주의 유적지 수백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눈이 없고 어떤 사람은 팔 또는 다리가 없다. 그들은 아마도 토속신이었으리라. 누가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예술작품 외에는 남은 것이 거의 없고 이 벽화를 그저 ‘고대인’이라고 불리는 수렵채취문화의 유적으로 볼 뿐이다.
최근 두 개의 유적지에서 모은 물감 부스러기를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해본 결과 이 벽화들이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연대가 맞다면 이 으스스한 작품들은 대다수 전문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두 배 이상 오래된 것이다.
협곡지역의 다른 곳에는 수백 개의 암석에 사람뿐 아니라 곰, 사슴, 뱀, 새, 전갈 등이 그려져 있다. 바위에 물감으로 그리거나 칼로 새기거나 쪼아서 완성한 이 암벽화들은 좀더 잘 알려진 문명이 남긴 작품이다.
후대인들은 계곡의 암벽에서 발견한 이런 그림들에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오늘날 이 지역의 많은 공원과 기념지를 보러온 관광객들은 경외심을 갖고 이 지역을 바라본다. 그러나 산악용 오토바이나 사륜구동차를 몰고 오는 일부 생각 없는 운전자들은 몇 십 년 혹은 몇 세기 동안 남을 바퀴자국을 남기고 간다. 그리고 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이 소중한 암벽화에 자기 이름을 서명하지 않으면 미완의 작품이라 생각하는지 칼자국을 내고 간다.
한편 땅은 천천히 자신의 역사를 써나간다. 지질구조 때문에 이 지역은 매년 1cm 정도 융기하는 한편 침식작용으로 꼭대기는 조금씩 깎인다. 협곡지역의 시간은 여유있게 서서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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