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라틴아메리카
글 : 마리 아라나 사진 : 로버트 B. 하스
장엄한 안데스 산맥과 거대한 아마존 강으로 하나의 땅덩어리를 이루는 라틴 아메리카. 하늘에서 바라본 라틴 아메리카의 역동적인 풍경을 소개한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땅에서 태어나 흙으로 형상을 빚고 바위를 옮긴 사람들이다.잉카시대부터 우리는 인간이 새싹처럼 땅에서 싹튼 생명이라고 믿었다. 이 변덕스러운 땅은 풍요로운 삶을 약속하기도 하지만 언제 지진을 일으켜 삶을 뒤흔들어놓을지 모른다. 대지는 우리를 먹여 살리지만 반대로 파멸시킬 수도 있다. 우리는 모질기도 하고 관대하기도 한 땅을 물려받은, 축복받은 동시에 저주받은 후손이다.
잉카인들이 그토록 태양을 사랑한 이유도, 마야인들이 하늘을 향해 계단을 쌓아올리고 스페인 정복자들이 십자가를 꽂으려고 높은 고원을 기어오른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대지의 품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 날개를 달고 날아갈 수 있기를, 콘도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마른 땅에 발을 딛고 있을 때 가장 편안한 페루 토박이가 자신의 고향 땅을 공중에서 바라보려는 사진기자의 여정에 합류한 상황을 상상해보라. 바로 내가 어느 가을날에 처한 상황이었다. 난 거친 기류 속을 뚫고 날아가는 필라투스 포터 단발기의 뒷좌석에 목숨을 걸고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우아일라스 계곡의 짙은 녹음 위를 날았다. 이 계곡은 만년설에 뒤덮인 장엄한 블랑카 산맥과 갈색 능선의 네그라 산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곳은 페루의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차빈 문명의 요람이었다. 고도로 발달된 그들의 농법은 훗날 모체 문명과 잉카 문명으로 전수되었다. 잉카인들은 안데스 산맥 고지에 있는 이곳을 ‘세계의 탯줄’이라는 뜻의 ‘쿠스코’라 불렀다. 우아일라스 계곡은 남아메리카 전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자랑하는 장려한 우아스카란 산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해발 6770m 높이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계곡 아래를 굽어보고 산을 덮고 있는 얼음과 눈은 산 아래 생명들을 소생시키기도 하고 소멸시키기도 한다.
라틴 아메리카는 이런 모순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찾은 방문객들에게 우리는 이 땅에 해안과 사막, 정글, 산, 늪, 군도 등 다양한 지형이 뚜렷한 경계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고 자랑한다. 태평양을 내려다보는 안데스 산맥의 하얀 절벽들과 매년 11월이면 홍수로 정글 바닥이 흘러넘쳐 재규어와 분홍돌고래가 함께 수영하게 되는 아마존의 울창한 우림이 공존하는 곳이다. 나는 1500m 상공에서 보기 전까지 이 지형들이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공중을 날고 있으면 불과 몇 분 만에 다른 지형으로 옮겨갈 수 있다. 봄꽃이 만발한 리마교외 해안 절벽이 순식간에 치무 왕국의 거대한 성채가 있던 모래 바람 부는 찬찬 사막으로 이어지고, 스페인 정복자들이 힘겹게 기어오르던 험준한 바위 또한 카하마르카의 푸른 골짜기로 바로 이어진다.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오랜 격동의 세월을 보내고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들이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고요하고 평온하기만 하다. 지형들은 경계선 없이 넓게 이어져 있어 온전한 하나의 땅덩어리로 보인다. 남아메리카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가 꿈꿨던 라틴 아메리카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등뼈를 이루는 기다란 산맥과 아마존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핏줄들로 하나가 된 거대한 땅덩어리. 이곳, 라틴 아메리카에는 국경도 국적도 없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하나로 모아 더욱 강한 공동체를 이루려는 볼리바르의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망명지에서 멸시받으며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 신세로 살다 죽었고 라틴 아메리카는 분열된 채로 꾸준히 각자의 길을 걸었다. 하나가 된 라틴 아메리카를 꿈꾼 이는 비단 볼리바르뿐이 아니었다. 티에라델푸에고 섬에 살던 용맹한 뱃사람들인 알라칼루프족과 멕시코의 아스텍족도 같은 꿈을 꾸었고 무수한 노력 끝에 원대한 꿈을 이루어냈다. 창의적인 모체족과 마야족, 잉카족도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스페인이 새로운 식민지를 찾아 서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유럽 전체가 야심에 불타올랐다. 라틴 아메리카는 이내 거대한 환상의 대상이 되었다. 15세기 현인들은 이곳에 난쟁이와 외눈박이 거인, 사나운 여전사나 개의 얼굴을 한 음울한 남자들이 산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곳을 젊음의 샘, 감각의 낙원, 황금의 세계, 즉 마법으로 가득한 세계로 상상했다.
콜럼버스는 항해에 나서기도 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 ‘이마고 문디’를 보며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땅을 기대했다. 훗날 그가 발견한 땅에 사람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16세기 무렵 토머스 모어 경은 이곳에 건설될 유토피아를 그려보기도 했다.
처음 이 땅을 발견하던 시절의 탐험정신과 상상력의 힘을 로버트 하스의 꿈 같은 사진에서 볼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삶이 아무리 모질고 현실이야 어떻든 우리는 끝까지 현실을 초월한 꿈을 추구하고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기적이 결코 일어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왜 메마른 나스카의 평원에 날아다니는 새들만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려놓았겠는가? 왜 하늘을 가로지르는 태양의 자취를 남기기 위해 치첸이차에 돌을 층층이 쌓아올렸겠는가?
하스와 하늘을 날다가 잠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어릴 적 뛰어놀던 페루 트루히요의 사탕수수밭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인류는 경이로운 화폭 위에 놓인 일개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거대한 지구 위를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와 같은 모습. 이런 모습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