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타는 미국 대서부
글 : 로버트 쿤직 사진 : 빈센트 라포레
미국인들은 물을 잘 다스려 서부에 터전을 일구었다. 그러나 물이 없어진다면 어찌될 것인가?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양분이 끊임없이 공급되면 나무도 사람처럼 느긋해진다.나이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미국 남서부 콜로라도리버밸리 바닥에서 물기를 가득 머금은 땅에 뿌리박고 사는 나무를 가리켜 ‘느긋한 나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나무는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는 데는 쓸모가 없다. 가뭄이 든 해에도 널찍한 나이테를 만들기 때문이다. 강처럼 기후변화에 바로 반응하는 나무, 즉 기후 따라 강폭이 변하듯 해마다 나이테 폭이 변하는 나무를 찾으려면 콜로라도리버밸리의 가파른 골짜기를 올라 벌목꾼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옹이 투성이 못생긴 나무를 골라야 한다. 왠지는 모르지만 이처럼 기후에 ‘민감한’ 나무가 느긋한 부류보다 오래 산다고 한다. “과유불급이죠.” 데이브 메코는 말한다.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나이테연구소에서 일하는 메코는 수십 년째 미국 서부지역의 기후를 연구하고 있다. 나이테 연구를 위한 현장조사는 별로 돈이 들지 않는다. 나무를 뚫는 생장추(生長錐), 껍질에서 고갱이까지 파낸 나무 속살을 담을 빨대, 자동차에 넣을 기름, 먹을 것, 잘 곳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비가 넉넉히 왔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메코는 얼마 안 되는 연구자금조차 마련하기 버거웠다. “가뭄으로 고생을 해봐야 관심을 갖죠.” 메코는 말한다.
3년째 가뭄이 계속되던 2002년, 남서부 곳곳에 기록적인 가뭄이 찾아오자 콜로라도 강물은 평균치의 4분의 1로 줄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관심을 보였다.
콜로라도 강은 미국 7개 주와 멕시코에 살고 있는 3000만 주민의 젖줄이다. 덴버, 라스베이거스, 피닉스, 투손,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가 모두 이 강에 의지하고 있고 올해부턴 앨버커키도 포함된다. 콜로라도 강은 1만 6000km2의 농지에 물을 대고 있다. 콜로라도 강이 없었으면 대부분 황무지가 되었을 땅이 지금은 수십억 달러의 작물을 생산하고 있다. 19세기에 처음으로 에이커-피트 단위 수량계측 방식이 도입되었다. 1에이커-피트는 1에이커 면적에 1피트 높이(1헥타르 면적에 75cm 높이)로 물이 찬 것으로 약 1235m3에 해당한다. 오늘날 댐, 저수지, 송수관, 수로 등 콜로라도 강물을 이용하기 위한 메머드급 기반시설은 과거의 수량계측 자료에 따라 운용되고 있다. 2002년이 되자 콜로라도 강의 수자원 관리자들은 과거의 계측 자료가 강물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콜로라도 주 덴버 시 곳곳에서 마당 잔디가 말라죽자 한 관리자는 메코의 동료에게 물었다. “이런 가뭄이 얼마나 잦았죠?”
그후 몇 년 동안 메코 연구팀은 콜로라도 강 상류에서 수령이 오래되고 기후에 민감한 나무를 찾아다니며 속살을 채취했다. 살아 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를 모두 조사했다. 기후가 건조하면 나무가 썩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메코는 유타 주 동부 하먼캐니언에서 BC 323년에 처음 나이테를 만든 미송을 발견했다. 이 정도 노송은 아니었지만 연구팀은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콜로라도 강의 변화를 유추할 수 있는 고목들을 수집했다. 지난 봄 연구결과가 나왔다. 콜로라도 강은 늘 20세기처럼 콸콸 흘러넘친 게 아니었다.
연구비 일부를 지원했던 캘리포니아 주 수자원국은 연구결과를 한 장의 포스터로 만들었다. 미국 남서부 풍경을 찍은 엽서 사진들 밑으로 AD 762년부터 2005년까지 나이테의 변화를 그린 그래프가 들쭉날쭉 이어진다. 가둬놓은 물을 방류하고 있는 후버 댐 사진도 보인다. 나이테를 보면 1920년대 캘리포니아 주 남동부 임피리얼밸리의 농지와 확장일로의 신생도시 로스앤젤레스에 강물을 대려고 후버 댐을 설계할 당시는 지난 1000년 중 강수량이 가장 풍부했다. 샌디에이고의 빌딩숲을 찍은 사진도 있다. 샌디에이고는 콜로라도 강 연안에 유난히 강수량이 많았던 1970~2000년 사이 인구가 두 배로 늘었다. 포스터 왼쪽에는 콜로라도 주 남서부 메사베르데 국립공원에 있는 ‘스프루스 트리 하우스’ 유적이 보인다. 이곳은 낭떠러지에 흙벽돌로 만든 아나사지족의 주거지로 아나사지족은 13세기 말 이곳을 떠났다. 그래프를 보면 아나사지족이 사라진 시기와 심한 가뭄으로 콜로라도 강물이 크게 줄어든 때가 일치한다.
나이테는 유럽인들이 미국 남서부에 정착하기 수백 년 전, 콜로라도 강 유역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후론 이처럼 길고 심한 가뭄은 없었다. 12세기에 13년 동안 계속된 대가뭄 기간에 콜로라도 강의 평균 수량은 1200만 에이커-피트였다. 이는 20세기 평균 수량의 80%에 불과하며 오늘날이라면 주민들의 용수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양이다. 만약 지금 이 정도 수량이라면 물 부족으로 ‘물 확보 대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지구온난화가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지난해 4월 사이언스 지에는 2050년쯤이면 미국 남서부에 ‘더스트볼(1930년대 미국 그레이트플레인스 일부 지역을 강타한 심한 가뭄)’ 상태가 고착될 것이라는 기후모델 종합연구보고서가 실렸다. 미 국립해양대기국(NOAA) 연구원들은 기후모델을 이용해 콜로라도 강의 수량을 예측해보았다. 콜로라도 강 수위가 지금처럼 가문 상태를 결코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예측이 나왔고 이는 다른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2050년 이전에 수량은 700만 에이커-피트로 떨어질 것이고 이는 현재 물 소비량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