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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글 : 내셔널지오그래픽 편집국 사진 : 게티이미지 외

개요
공식 명칭: 아르헨티나 공화국
정부 형태: 공화국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구: 45,773,884명 (2023년 기준)
공식 언어: 스페인어
통화: 아르헨티나 페소
면적: 2,780,400㎢

지리
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 남부에 있는 넓은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나라로 브라질 이후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크며 우리나라보다 약 27배 큽니다. 아르헨티나는 서쪽으로 안데스산맥과 칠레와 접하고 있습니다.
안데스산맥의 동쪽에는 팜파스라고 불리는 평평하고 비옥한 대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나라의 동쪽 경계는 대서양과 맞닿아 있습니다. 북서쪽에는 볼리비아, 북쪽에는 파라과이가 있습니다. 안데스산맥의 높은 산등성이인 ‘안데스 코르디예라’는 자연스럽게 약 5142㎞에 이르는 칠레와의 국경을 이룹니다.
아르헨티나는 안데스, 북부, 팜파스, 파타고니아로 구분됩니다. 팜파스는 농업의 중심지입니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람들과 문화
멕시코나 페루, 에콰도르와 같은 남아메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아르헨티나는 원주민 인구가 적고 유럽에서 온 인구가 많은 나라입니다. 인구의 약 95%가 유럽계로, 주로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원주민들은 대체로 유럽인들이 가져온 질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인구의 거의 절반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아 ‘남아메리카의 파리’로 불리기도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주민들은 교육 수준이 높으며 인구의 97%가 글을 읽고 쓸 수 있습니다.
축구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팜파스에서 소몰이하는 목동인 가우초는 미국의 카우보이와 같이 팜파스 평야 지대의 상징입니다.

자연
아르헨티나는 동물 종 다양성이 풍부합니다. 파타고니아 연안은 코끼리물범, 물개, 펭귄, 바다사자 등이 서식하는 곳입니다. 대서양에는 상어, 범고래, 돌고래, 그리고 연어가 서식합니다.
북부 지역에는 퓨마, 재규어, 오셀롯 등의 큰 고양잇과 동물이 많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악어와 카이만악어도 있습니다. 열대 지방에는 홍학, 투칸, 거북 등이 서식합니다.
파타고니아는 자원과 야생동물이 풍부하며 인구가 적은 지역으로, 여기에는 여러 종류의 새, 콘도르, 퓨마, 거북, 과나코 등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안데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6960m에 이르는 아콩카과산입니다. 아르헨티나 북동부에는 열대우림과 이구아수 폭포가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 지역에 있는 이 장엄한 폭포는 너비가 약 2700m로 말발굽 모양으로 물줄기가 떨어집니다.
나라가 발전함에 따라 산림 파괴와 오염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사진: 톰 코크렘
정부와 경제
아르헨티나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여러 해의 정치적 혼란 끝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들이 있었습니다.
국회는 72석으로 구성된 상원과 총 257석으로 이뤄진 하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최고법원에는 일곱 명의 판사가 있으나 이 수는 앞으로 몇 년 내에 다섯 명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대통령은 판사들을 지명하며 상원은 지명을 승인해야 합니다.
양치기, 석유, 광업, 농업 및 관광이 파타고니아의 경제를 구성합니다.

역사
스페인 사람들이 1516년에 도착하여 300년 동안 아르헨티나를 지배했습니다. 1806년에 영국 군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스페인 군을 압도하고 말비나스제도, 일명 포클랜드제도를 공격했습니다. 현지 주민들이 수도를 되찾았지만, 섬들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스페인의 아르헨티나에 대한 지배가 느슨해졌습니다.
1810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스페인의 모든 주요 도시들을 정복했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치권을 얻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1816년에 독립했습니다.
1946년에 후안 페론이 노동자들의 인기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인 에바, 일명 에비타는 재단을 설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과 혜택을 제공했습니다. 1952년 그녀가 암으로 사망하자 사람들은 매우 슬퍼했습니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후안 페론은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려다가 축출되었습니다. 그가 물러난 뒤에도 그의 추종자들은 정치적 권력을 위해 싸웠습니다.
수년간의 폭력 사태와 내전과 다름없는 상태를 거친 뒤 후안 페론이 재선출되고 그의 새 아내 이사벨이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페론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이사벨이 대통령이 되었고, 곧 나라의 경제가 무너졌습니다.
1976년에 군부가 나라를 지배하자 ‘더러운 전쟁’이라고 불리는 폭정 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2만~3만 명의 혁명가 및 혁명에 동조한 자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1982년에 아르헨티나 대통령인 레오폴도 갈티에리가 대서양에 있는 포클랜드제도를 침공했습니다. 갈티에리는 포클랜드제도의 지배권을 가진 영국이 반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갈티에리의 예상은 빗나갔고 영국군은 손쉽게 승리했습니다. 영국에게 패배한 후 아르헨티나는 민주주의와 문민 통치를 지향했습니다.
 
사진: 곤살로 아수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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