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인스타그램 보기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키즈

매거진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숲에 사는 유령

글 : 나디아 드레이크 사진 : 케니 허타도

이 하얀 상록수는 유령의 모습을 한 채 다른 나무에 기생해 살아간다. 백색증에 걸린 레드우드는 유전학적으로 불가사의하고 경이로운 존재다.

험준한 협곡 건너편의 어둠 속에 유령 하나가 떠 있다. 그 유령은 캘리포니아주 샌타크루즈 카운티에 있는 이 레드우드 숲에 산다.

우리는 계곡으로 미끄러져 내려간 뒤 다른 경사면을 오른다. 미국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한 번, 두 번, 세 번 우짖는다. 우듬지에서 여명이 밝아오고 있지만 이곳 수관 아래쪽은 여전히 쌀쌀하고 어스름하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놀랍게도 새하얀 나무가 마치 저세상의 유령처럼 몸을 흔들고 있다. 바로 백색증에 걸린 레드우드다. 이 나무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생물학상 불가능한, 존재할 수 없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 나무의 수령은 100년이 넘습니다. 녀석은 샌타크루즈 카운티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에 속하죠.”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캠퍼스에서 레드우드의 유전체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제인 무어가 말한다.

이 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대신 하얗다. 또한 바늘잎은 밀랍을 입힌 듯 부드럽다. 레드우드는 보통 햇빛을 모아 이를 영양분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생존한다. 하지만 백색증에 걸린 이 나무의 경우 기본적인 세포 기제에서 스스로 영양분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구성 요소가 빠져 있다. 그 대신 이 나무는 엽록소를 지닌 모체 나무의 뿌리에 접근해 당분과 영양분을 얻는다.

지구상에서 보기 드물지만 백색종 나무는 안개가 자욱한 레드우드 서식지에서 자생한다. 과학계에서 이 나무들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모체 나무가 다른 싹들을 버리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은 돌연변이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우리가 찾아간 나무처럼 키가 큰 개체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은 키가 더 작고 잎이 더 무성하다. 모체 나무에서 싹을 틔워 높이 자란 나무들도 있다. 50그루 정도는 자연적으로 흰색과 초록색이 섞인 개체로 자라난다. 즉, 서로 다른 유전 명령 체계를 두 개 지닌 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나무 중 하나가 소노마 카운티의 공공 통행로 근처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 나무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애정이 어찌나 깊은지 2014년에 철도 건설업체가 이 나무를 베어버리려 했으나 주민들의 요구에 못 이겨 이 나무를 파내 트럭에 실은 뒤 다른 곳에 옮겨 심었다.



백색종 나무는 미국 정착민들이 크림색을 띠는 이 나무의 기이한 잎사귀를 알아보기 시작한 180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출판물에 등장했다. 그 이후 몇 가지 예외 사례가 있었지만 백색종 나무가 자라는 곳은 나무 수집가나 장식가로부터 안전하도록 철저한 보호를 받았다.

현재 세계적인 나무 전문가로 손꼽히는 무어에 따르면 우리가 새벽에 찾아간 키 큰 백색종은 1970년대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무어는 또 다른 동료와 함께 백색종 레드우드 지도를 관리한다. 이 지도는 오리건주 남부와 캘리포니아주 중부 사이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백색종 약 630그루에 대한 안내서로 계속 내용이 추가되고 있다. 지도에 표시된 나무 중 일부는 애호가들이 재배한 것이다. 그 외 100여 그루는 무어가 우연히 발견했다. 그가 캘리포니아주의 어느 악명 높은 고속도로 위에서 해변으로 향하는 차량 때문에 심한 정체를 겪고 있을 때 흘끗 본 나무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는 주로 과거의 자료나 현지인의 조언을 바탕으로 백색종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날 늦게 그는 자신이 처음 마주쳤던 백색종 나무를 내게 보여준다. 그 나무는 헨리코웰레드우즈 주립공원에 있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잘 다져진 순환로를 걸어다니며 오래된 레드우드 숲의 웅장함과 기괴함을 경험할 수 있다.

이 거목들은 풍경을 압도하고 숲에 원시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이에 반해 무어가 가장 처음 마주친 백색종 나무는 키가 대략 사람만 하고 갈색과 흰색 가지가 섞여 있으며 공원 내 철로 근처의 표지판도 없는 작은 숲에 자리하고 있다. 그는 백색종 나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직접 그런 나무를 찾아보기로 결심했고 결국 2011년에 이 나무를 발견했다.

백색종 레드우드에 관한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이 나무들에 관해 설명하는 과학 문헌조차 흔치 않다. 최근 과학자들은 백색증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찾으려고 했지만 레드우드의 유전체 그 자체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레드우드의 유전체는 11개의 염색체가 6배수로 존재하며 염기쌍이 265억 개에 달하는 거대한 배열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이 나무들에 광합성 기제가 부족할 뿐 아니라 잎의 작은 기공을 통해 손실되는 수분을 제어할 능력도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수분 손실은 온도가 높으면 더 빠르게 진행된다. 또한 백색종 나무는 엽록체를 지닌 나무보다 약한데 이는 아마도 세포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리그닌이라는 화합 물질을 쉽게 생성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살아온 이 나무들을 연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수분 손실에 대해 연구했던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크루즈캠퍼스의 생태생리학자 자밀라 피터만은 말한다.

2016년 무어는 백색종 나무 일부가 녹색 잎을 지닌 모체 나무보다 카드뮴과 니켈, 구리 함유량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양은 식물에 해를 입히는 데 필요한 양의 11배에 달했다. 그는 백색종 나무가 해당 중금속을 끌어와 어떤 식으로든 모체 나무를 이롭게 해줬던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모체 나무가 백색종 나무에 대한 영양소 공급을 차단할 수도 있다고 연구원들은 추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과학자들 사이에서 합의된 내용은 아직 없다. 그리고 현재 백색종 레드우드에 관한 연구는 뜻밖의 진전을 보이고 있다. 탄소와 수소 원자가 나무의 물질대사 통로를 통해 이동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연구진이 고대의 환경을 더 제대로 재구성하기 위해 이 나무들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백색종 레드우드의 수명이 짧다고 말한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훤히 드러난 곳에 숨어 있는 유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의 레드우드 서식지에서는 인간이야말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유령 같은 존재다. 헨리코웰레드우즈 주립공원에 전시돼 있는 그루터기는 기독교가 탄생하기 200년 전 캘리포니아주의 숲에서 싹을 틔운 나무의 일부였다. 이 주립공원에서 가장 오래된 이 나무는 1000년이 넘도록 햇빛을 흡수해왔다.

약하다고 추정되는 백색종 나무조차도 우리 인간보다 오래 산다. 무어는 공원 내 철로 근처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내게 보여준다. 1877년에 찍은 사진에도 등장하는 그 관목은 굽은 금속 철로 옆에서 무심히 빛을 내며 자라고 있다.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1912년 처음으로 글에 등장한 거대한 나무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무어는 말해준다.

“1970년대에 밑동을 완전히 잘라냈지만 아직도 다시 자라고 있습니다. 멋진 백색종 나무를 보고 싶나요? 그렇다면 바로 그 나무를 봐야 해요. 약 68m² 면적을 차지하고 평균 높이가 4.5m, 어쩌면 6m에 이를지도 모르는 하얗고 거대한 나무예요. 정말 특별하죠.” 무어가 말한다.

당연한 수순대로 우리는 그 나무를 보러 간다. 두 집 사이에서 무심하게 자라고 있는 이 나무의 우윳빛 가지들은 사방으로 뻗어 나와 정신없이 얽히고설켜 있다. 이 가지들은 불과 50년 사이에 다시 자라난 것이다. 현재 레드우드에 대한 위협은 무엇이든 백색종 나무에도 위협이 된다고 피터만은 말한다. “백색종 나무의 활력은 모체 나무의 건강 상태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그러나 완전히 잘린 이 나무가 다시 자라난 것과 동일한 현상은 산불 직후에도 관찰된다. 하얀 싹은 화마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종종 가장 빨리 자라는 식물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된 레드우드 숲의 품에서 자랐다. 그러나 나는 거의 25년이 지나고 나서야 어린 시절 자주 다니던 산책로 중 한 곳을 따라 무성하게 나 있는 백색종 나무의 새싹 무리를 발견했다. 눈처럼 하얗고 뾰족한 이파리가 소형 승합차만 한 크기로 자라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그 옆을 여러 차례 지나갔지만 이 나무의 두드러지는 색깔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쩌면 빛의 속임수라고 치부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연의 특이함과 불가사의함을 상징하는 이 백색종 레드우드는 여전히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이 나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포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