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귀코끼리의 위태로운 피난처
글 : 유디지트 바타차르지 사진 : 야스퍼 두스트
가봉의 한 외딴 숲에 있는 나무들이 밤 기온이 상승하고 강수량이 감소한 탓인지 예전만큼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 중 하나가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가 저 멀리 로페를 뒤로한 채 차를 타고 가봉 중부에 자리 잡은 로페 국립공원의 삼림 지대로 들어갈 때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로페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마지막 소도시다.
흙길 양옆으로 초원과 빽빽한 열대 우림이 뒤섞여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무성한 숲으로 막 들어서려는 찰나에 우리의 운전기사이자 이 국립공원의 연구소를 관리하는 로익 마카가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코끼리예요!” 그가 앞을 가리키며 나지막하면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시동을 껐다.
몇 백 미터 앞에서 코끼리 떼가 숲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달빛 아래 여섯 마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아기 코끼리는 어미로 추정되는 녀석의 재촉을 받으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녀석들은 느긋하게 길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어느 가족이 오래전부터 터로 삼았던 장소에 불쑥 침범한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은 마음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 사소한 바람을 이루고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사이 우리의 오른쪽으로 불과 3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커다란 수컷 코끼리 한 마리가 코를 높이 치켜든 채 공격적으로 울부짖었다.
“가야 해요!” 마카가가 급히 말하며 지프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가봉의 우림은 둥근귀코끼리의 몇 안 남은 서식지에 속한다. 중앙아프리카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밀렵으로 인해 녀석들의 개체수가 급감했다.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몸집이 작은 둥근귀코끼리는 대대로 걸어온 길을 배회하며 풀과 나뭇잎, 열매를 먹는 수수께끼 같은 동물이다. 녀석들은 부드럽게 발을 디디며 나무 사이를 조용히 거닌다. 한때 인간이 계절에 따라 채집 계획을 세웠던 것처럼 녀석들도 열매가 익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에 같은 나무를 다시 찾아오는 등 먹이를 구할 때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듯하다.
코끼리가 생존을 위해 숲에 의지하듯 로페 국립공원의 수많은 나무들도 코끼리의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 코끼리에 의존한다. 심지어 어떤 나무들은 코끼리 외에 다른 동물은 소화할 수 없는 열매들을 맺는데 이를 통해 진화 역사상 불안정한 상호 의존 관계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비교적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로페 국립공원과 그곳에 사는 코끼리들은 위기에 처한 듯하다. 연구원들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 국립공원에 있는 다수의 수종이 열매를 더 적게 맺고 있는지도 모르며 그로 인해 둥근귀코끼리가 굶주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몇몇 녀석들은 두꺼운 살가죽 위로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영양이 부족한 상태다. 일부 수종의 경우 생존이 코끼리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코끼리 개체군의 위기는 이 숲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도 있다.
“인간으로부터 받는 압박이 거의 없고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로페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조차도 야생동물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영향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곧 기후변화를 말하는 것이죠.” 2020년에 이 연구 결과에 대해 다룬 논문을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의 공동 저자이자 영국 스코틀랜드 스털링대학교의 환경과학자인 로빈 와이톡은 말한다.
맑고 습한 어느 아침, 나는 가봉 국립공원청 소속 현장 연구원 에드먼드 디모토를 따라 ‘르샤모’라고 불리는 산의 경사면에 형성된 무성한 숲으로 도보 여행에 나섰다.
디모토는 무릎까지 오는 고무 장화로 신발을 갈아 신은 상태였다. 지난밤에 내린 비 때문에 여전히 미끄럽고 축축한 길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그는 전지가위로 덩굴손과 덩굴을 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숲은 곤충들의 웅웅거리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했다.
디모토가 옴팔로카르품 프로케룸으로 알려진 나무 앞에서 멈춰 섰다. 이 나무에는 도넛 모양의 열매가 몸통에서 자라나 있었다. 이 열매는 껍데기가 아주 단단해서 코끼리를 제외한 어떤 동물도 먹을 수 없다. 녀석들은 머리를 마치 공성 망치처럼 나무에 부딪혀 열매를 떨어뜨린다. 그런 다음 놀라운 기술을 이용해 코끝으로 열매 하나를 집어 코를 구부려 열매를 감싼 뒤 입 가까이 가져가 코끝으로 이를 잽싸게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목덜미에 땀방울이 흐르는 디모토가 쌍안경을 눈에 대고 위쪽으로 펼쳐진 수관층을 살폈다. 그는 재빨리 열매의 수를 셌다. 몇 분 뒤 그는 잎과 꽃, 열매가 얼마나 풍부한지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적었다. 그는 관찰한 각각의 나무를 1(적음)부터 4(풍부함)까지의 등급으로 평가한다.
지난 25년 동안 디모토는 거의 매달 로페 국립공원의 숲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며 아보카도 크기에서 수박 크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열매를 맺는 나무들의 상태를 확인해왔다. 이 임무를 갓 시작했을 때 그는 고릴라에게 쫓기기도 했다. 당시 너무나 겁을 먹은 디모토는 동료들에게 “이제 더 이상 이 일을 못하겠다”고 말했지만 동료들은 그가 관두지 못하도록 그를 말렸다.
디모토가 하는 관찰 작업은 영장류학자 캐롤라인 투틴이 1984년에 시작한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투틴과 그녀의 동료들이 세운 연구소는 로페 국립공원 안에서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그들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열매의 양이 고릴라와 침팬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자 했다. 투틴의 연구는 2000년대 초반에 끝났지만 나무 수백 그루를 대상으로 한 월간 관찰 작업은 그 후로도 계속돼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비슷한 종류의 연구로는 최장 기간 이어지고 있다.
와이톡의 스털링대학교 동료인 에마 부시는 2016년부터 그 자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열매의 양이 크게 줄어든 사실을 확인했다. 관찰한 73종의 나무에서 익은 열매를 발견할 확률이 1987년에서 2018년 사이에 평균 81% 줄었다. 1987년에는 코끼리가 익은 열매 하나를 찾는 데 나무 10그루를 살펴야 했다면 지금은 50그루 이상을 살펴야 한다.
부시에게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가 하나 있었다. 1990년대에 투틴은 평년보다 더운 해에 특정 수종이 꽃과 열매를 더 적게 맺은 사실을 관찰한 바 있었다. 그녀는 그 나무들이 꽃을 피우려면 밤 기온이 대략 19℃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고 추정했다.
로페 국립공원의 지난 30년 동안의 기상 자료를 살펴본 부시와 동료들은 밤 평균 기온이 0.85℃ 정도 상승한 사실을 발견했다. 강수량 또한 심각하게 줄었다. 기후변화가 로페 국립공원을 더 덥고 건조한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이 열매가 줄어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줄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시는 말한다.
부시는 와이톡에게 연구 결과를 전달한 뒤 기후변화가 로페 국립공원의 야생동물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의논했다. 와이톡은 감시 카메라 수백 대를 이용해 이 국립공원의 생물다양성을 평가하는 프로젝트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또한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애나벨 카도소가 자신의 연구를 위해 설치해놓은 감시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통해 코끼리들의 최근 모습도 본 터였다.
코끼리들 중 다수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척해 보였다. 일부 사진에서는 녀석들의 갈비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와이톡은 1990년대 초에 찍힌 코끼리들의 사진들을 떠올렸다. 그 사진들에서는 녀석들의 배가 볼록하고 궁둥이가 통통했다. 그 차이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코끼리들의 옛 사진들을 찾던 와이톡은 생물학자이자 가봉 산림·해양수산·환경부 장관인 리 화이트에게 도움을 청했다. 화이트는 1990년대 말에 로페 국립공원에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캠코더로 코끼리 영상 수백 개를 촬영한 바 있었다.
화이트에게 받은 비디오테이프와 다른 자료들을 활용해 와이톡은 코끼리 사진 수천 장으로 구성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는 겉으로 뼈가 드러나는 정도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둥근귀코끼리의 건강 상태가 2008년에서 2018년 사이 평균 11%나 악화된 사실을 밝혀냈다. 로페 국립공원에 열매가 부족했다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이유였다. “코끼리의 식단 중 열매와 씨앗은 열량이 가장 높은 먹이입니다.” 부시는 설명한다.
로페 국립공원의 코끼리들이 부족한 열매를 보충하기 위해 시도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한밤중에 인간의 텃밭을 습격하는 것이다. 국립공원과 맞닿는 곳에 있는 정착촌에 살던 장 샤를르 아디구는 바나나와 질경이를 기르던 뒤뜰에 코끼리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종종 잠에서 깼다고 말했다. 아디구는 녀석들을 쫓아내려고 주민들과 함께 최대한 시끄러운 소리를 내곤 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이미 늦었을 때가 많았다. 코끼리 여섯 마리는 단 몇 분 만에 뒤뜰에 있는 텃밭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어요. 코끼리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죠.” 그는 말했다.
수십 가구가 모여 사는 이 정착촌의 또 다른 주민이자 어부인 뱅상 보시시는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의 집 뒤뜰에 있는 망고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보시시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 뒤뜰에서 옥수수도 기른다. 그에게 코끼리들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따르면 코끼리들은 망고를 특히 좋아했다. 보시시는 머지않아 코끼리들이 밤에 찾아와 그의 망고 나무에 달린 망고들을 전부 먹어치울 것이라고 확신했다.
코끼리를 달가워하지 않던 보시시와 달리 그의 이웃 브리지트 무사부는 마을 사람들 다수가 코끼리들이 있어야 특정 수종이 재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귀한 모아비나무도 그중 하나다. 이 나무의 씨앗은 식용유에 사용된다.
“우리는 작물을 지키고 싶어요. 하지만 우리는 코끼리를 적대시하지는 않아요.” 그녀는 말했다.
로페 국립공원에서 과학자들은 이제 기후변화가 코끼리들의 식단을 바꾸고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코끼리 배설물을 찾아 나선 현장 연구원 두 명과 동행했다. 차를 타고 이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끼리가 길가에 막 남기고 간 배설물 더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연구원 한 명이 고무장갑을 낀 뒤 배설물 덩어리의 수를 세고 각 덩어리의 둘레를 줄자로 쟀다.
이렇게까지 꼼꼼히 수집하는 이유는 코끼리들이 얼마나 많은 배설물을 배출하는지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멋쩍어 하며 말했다. 이 자료들은 시간이 흘러 코끼리의 먹이 섭취량에 대해 알려줄 것이다.
비닐봉지에 코끼리 배설물을 담은 우리는 시냇가로 차를 몰고 갔다. 연구원들은 배설물을 직사각형 모양의 철망 위에 쏟아낸 뒤 시냇물에 담가 잔 배설물은 씻겨 보내고 씨앗과 줄기, 가지만 남겼다. 와이톡에 따르면 연구원들은 이 씨앗들을 통해 코끼리들이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먹고 있는지 밝혀내 30년 전 화이트와 연구진이 진행한 배설물 조사의 결과와 비교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둥근귀코끼리의 식단에 변화가 있는지 측정해볼 수 있는 더욱 직접적인 방법이죠.” 그는 말한다.
어느 이른 아침, 차를 타고 로페 국립공원을 빠져 나오는데 예전에 코끼리들을 봤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붉은물소 한 마리가 우리의 길을 막고 섰다. 우리도 녀석을 응시하고 녀석도 제자리에 서서 우리를 응시했다.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는 기온 상승으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해보게 됐다. 붉은물소는 마침내 어슬렁거리며 떠나갔고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언덕과 숲이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동안 나는 끔찍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로페 국립공원처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에서 나무와 코끼리 간의 오랜 관계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사전 경고가 아닐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보이는 다른 숲들도 이미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훼손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곳의 나무들을 관찰할 에드먼드 디모토 같은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