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들지 않는 저항심
글 : 파울라 라몬 사진 : 마리아 다니엘 발카사르
브라질에서 노예 제도를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후손들이 문화와 종교,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로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지바니아 마리아 다 시우바(56)는 대서양 노예 무역의 희생자였던 아프리카 출신의 여성들이 브라질 동부에 세운 한 공동체에서 태어났다. 시우바는 브라질에서 자라면서 과거 노예로 살았던 사람들의 많은 후손들과 마찬가지로 인종 차별과 때로는 더 심한 일까지 겪었다. 브라질은 서반구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노예 제도를 금지한 나라다.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킬롬보’에서 산 그녀는 그들이 살던 땅을 빼앗으려는 외부인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당한 적도 많았다. 킬롬보는 노예 생활을 하다 도망친 사람들이 브라질에 세운 공동체로 그 수가 수천 개에 이른다.
시우바는 콘세이상다스크리올라스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학사 학위를 받은 여성이 됐다. 이는 킬롬보 주민들이 개인의 권리와 재산권을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온 이 나라에서 엄청난 성취임에 틀림없다.
교사이자 운동가로서 시우바는 킬롬보의 역사뿐 아니라 킬롬보 주민들이 수 세기 동안 시달려온 폭력과 억압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도 번성해온 활기찬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데 30년을 바쳤다.
브라질 헌법은 브라질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고 100년이 지나 1988년이 돼서야 킬롬보에 사는 아프리카계 브라질인들의 재산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토지 소유권을 가진 킬롬보 주민은 지금도 드물며 이들이 부동산 명의를 얻는 것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사라지지 않는 불평등과 낙인은 노예살이를 했던 이들의 후손들의 삶을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다.
“노예 제도의 폐지는 흔히 흑인들에게 이익만을 가져다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예 제도가 폐지되면서 흑인들이 길거리로 나앉아 집도 땅도 없는 부랑자 신세가 됐죠.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요.” 시골 지역의 흑인 킬롬보 공동체를 위한 국가조정위원회(CONAQ)에서 중역을 맡고 있는 시우바가 말한다.
킬롬보는 브라질에서 오랫동안 속박과 억압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돼왔다. 시우바에 따르면 킬롬보는 “흑인들의 인권을 비롯해 흑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납치되면서 시작된 폭력의 전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준 모습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나타낸다.
페르남부쿠주에 있는 콘세이상다스크리올라스에는 약 4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19세기 초부터 여성들이 그곳에 정착했다.
킬롬보에 소속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피부색보다 더 중요한 요소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시우바는 말한다. 즉 그것은 “이 공동체가 노예 제도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맺은 유대 관계입니다. 킬롬보라는 단어는 싸우고 저항하며 재정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지칭하게 됐죠.”
이르게는 1530년부터 350여 년 동안 포로로 잡힌 약 48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배에 실려 브라질로 이송됐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수다. 노예 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해인 1888년쯤에는 노예로 잡혀 있던 많은 이들이 이미 달아나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세운 상태였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약 110만 명의 사람들이 브라질 전역에 걸쳐 존재하는 약 5900곳의 킬롬보에 살고 있다. 킬롬보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계 후손들의 재산권이 브라질 헌법에 의해 인정된 지 34년이 흐른 지금 정부로부터 보호구역의 지위를 부여받은 킬롬보는 10%도 안 된다. 보호구역의 지위를 받게 되면 미국의 원주민 보호구역과 비슷하게 개발 행위로부터 땅을 보호할 수 있다.
브라질 지리통계연구소의 조사 결과 브라질 국민의 56%에 달하는 약 1억 1900만 명이 자신을 아프리카계 혈통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정치, 예술 분야의 요직은 대부분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리통계연구소에서 발표한 2020년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의 평균 소득은 백인의 딱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임금 격차 비율은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거의 변함이 없었다.
“도시에서는 고용주들이 우리에게 육체 노동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일을 많이 하지만 벌이는 아주 적어요. 그러니 여전히 노예나 마찬가지죠.” 브라질 남동부에 있는 주앙수라 킬롬보 공동체에 사는 베네디투 드 프라이타스(42)는 말한다.
이곳에 거주하는 다른 55개 가정과 마찬가지로 드 프라이타스의 선조들도 이 지역의 금광에서 노예로 일하던 중 달아나 밀림에 터를 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선조들이 자유를 찾아 나섰기 때문입니다. 억압을 받는 상황에서도 흑인 남성과 여성을 존중하는 곳이 바로 이곳 킬롬보입니다.” 그는 말한다.
킬롬보 주민들에게 킬롬보는 인종적 정의와 문화적 정체성, 종교를 지키기 위한 힘의 원천이다. “우리의 종교와 춤, 음악에는 다양한 표현이 담겨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역사학자 카시우스 크루스가 말한다.
천주교는 브라질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지만 복음주의 신앙도 점점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공식 수치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종교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의 비율 또한 증가했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편에 속하는 것은 칸돔블레다.
“내게 종교는 혈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줄리아나 두스 산투스 시우바(37)가 말한다. 그녀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복음주의적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지만 그녀의 조부모와 증조부모는 칸돔블레교 신자였다. 산투스 시우바는 11년 전 신을 섬기기 위해 치러진 한 의식에 참여했다가 처음 칸돔블레교를 접했다. “노래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의 기운과 환희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그녀가 말한다. 그녀는 칸돔블레 의식이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 도움이 됐으며 조부모와 특별한 유대감을 갖게 해줬다고 덧붙였다.
프랭클린 모레이라(30)는 “킬롬보가 우리의 혈통을 나타내는 성스러운 장소이며 그러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방식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선조들은 많은 고난을 겪었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킬롬보를 존속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킬롬보는 우리를 계속 저항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