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드니 대성당의 첨탑 재건 프로젝트
글 : 로버트 쿤직 사진 : 루카 로카텔리
세계 최초의 고딕 성당을 복원하기 위한 180년간의 여정을 들여다본다.
프랑스 파리 북쪽에 자리한 생드니 대성당은 그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다. 생드니 대성당은 수십 명의 프랑스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어 프랑스 왕실의 묘지라 불리는 동시에 고딕 건축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첨두아치와 높이 솟은 늑재 궁륭, 길게 뻗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까지 이 모든 새로운 양식들이 한데 어우러져 12세기에 생드니 대성당이 탄생했다. 머지않아 생드니 대성당의 건축 양식을 모방한 성당이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 생겨났고 그중에서는 남쪽으로 약 9km 떨어져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가장 유명하다. 앞서 말한 모든 건축 양식들은 오늘날에도 생드니 대성당에 남아 있지만 이 대성당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고딕 양식 한 가지만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바로 북쪽 정면 모서리에 있던 종탑과 한때 그 위로 약 90m 가까이 치솟아 있었던 석재 첨탑이다.
현재 물랭이 구상한 계획 덕분에 재건 작업이 시작됐다. 대성당 뒤편에 마련된 작업장에서는 끌이 돌을 깎는 둔탁한 소리가 오래된 벽에 울려 퍼진다. 작업장 안에서는 장인들이 건축용 석재를 손수 다듬고 있다. 대성당 정면 위쪽, 그러니까 사라진 석탑의 그루터기처럼 남은 자리에서는 석공들이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도록 새 석탑의 첫 단을 쌓아 올리고 있다. 2030년경이면 생드니 대성당은 첨탑을 되찾게 될 것이다.
새롭게 지어진 첨탑 아래로는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생드니는 한때 동명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이민자들, 특히 무슬림들이 주로 거주하는 노동자 계층 중심의 외곽 도시가 됐다. 그럼에도 생드니 대성당은 여전히 도시의 핵심 명소로 경제 발전을 이끌 잠재적 동력이자 영적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생드니 시장인 마티유 아노탱은 성당을 소유한 프랑스 정부로부터 아무런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자 주로 지방 정부의 자금을 끌어모아 새 첨탑과 관광 안내소 건립을 위한 3800만 유로의 예산을 어렵사리 마련했다. 건축 역사학자 마티유 루어스는 “우리는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그저 180년이 늦었을 뿐이다.
생드니 대성당의 이름은 파리의 초대 주교 성 드니의 이름을 딴 것이다. 드니는 3세기경 파리 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참수형을 당한 순교자다. 전설에 따르면 드니는 잘려나간 자신의 머리를 들고 훗날 자신의 무덤이 되는 곳까지 북쪽으로 약 6km를 걸어갔다. 6세기 무렵에는 그 무덤 위에 작은 예배당이 세워졌고 12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예배당이 유명한 수도원의 일부가 됐다. 바로 이 시기에 쉬제라는 선구적인 수도원장 덕분에 예배당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쉬제는 1130년경부터 1144년까지 10여 년 만에 서쪽 전면부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외벽을 추가하고 동쪽 끝에는 고딕 양식의 반원형 제단을 더해 건물을 대폭 증축했다.
그러나 1837년 6월 9일, 생드니 대성당의 첨탑이 번개에 맞아 세 개의 큰 구멍이 생겼으니 그중 하나는 직경이 약 2m나 됐다. 1813년부터 생드니 대성당을 복원해온 건축가 프랑수아 드브레가 폭풍우가 몰아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첨탑을 헐고 다시 지었다.
하지만 1830년 설립된 유적 관리국은 드브레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았다. 역사학자 장 미셸 르니오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당시 유적 관리국의 야심 찼던 지도부는 프랑스에서 가장 탐나는 복원 프로젝트에 속하는 생드니 대성당의 복원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싶어 했다. 그러려면 이전부터 생드니 대성당을 복원해오던 드브레를 몰아내야만 했다. 1845년, 연이은 폭풍우로 또 한 번 첨탑이 손상되자 관리국은 드브레가 복원한 첨탑의 무게를 탓했다. 물랭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지적이었다. 드브레는 어쩔 수 없이 복원한 첨탑을 헐었다. 그 후 관리국은 69살의 선구자 드브레를 내쫓고 지도부가 점찍은 32살의 천재 외젠 에마뉘엘 비올레르뒤크를 후임자로 앉혔다. 비올레르뒤크는 당시 20년에 걸친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 작업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그는 첨탑 전체를 재건하겠다고 공언하며 첨탑 아래에 있던 종탑까지 해체해버렸다. 하지만 그는 첨탑을 재건하는 대신 해체한 돌들을 팔아버렸다.
물랭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복원 방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생드니 대성당에 드브레의 첨탑을 재건하겠다는 그의 계획은 시작부터 역풍을 맞았다. 2017년, 물랭이 이 계획을 처음 제안하자 국가유산위원회는 이를 거부했다. 생드니 대성당의 첨탑이 워낙 오랫동안 없었기 때문에 그 부재 자체가 이미 성당 역사의 일부가 됐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다시 첨탑을 지으면 “유적의 정통성과 중요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유산위원회는 높이 평가를 받는 기관이지만 그 의견은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2021년경에는 연이어 집권한 두 정부가 이 프로젝트를 지지했고 문화부 또한 이를 공식 승인했다. 그러자 프랑스 시사 주간지 <르 푸앙>은 128명의 전문가가 서명한 맹렬한 반대 서한을 게재했다. 서한은 “생드니 대성당에는 첨탑이 필요 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반대 서한의 공동 작성자 중 한 명인 젊은 역사학자 마티유 르죈은 재건 공사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봄에도 “생드니 대성당은 이미 그 자체로 온전한 유적”이라며 “신고딕 양식의 첨탑을 짓는다는 이유로 이 대성당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 당국은 이 첨탑 재건을 도심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을 경제 개발 프로젝트로 보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 ‘쉬베 라 플레슈(‘첨탑을 따라가라’라는 뜻)’의 책임자 니콜라 마티야지크는 연간 방문객 수가 두 배로 늘어 약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보티노와 물랭이 추구하는 새로운 첨탑의 “정통성”은 그저 역사적 기록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공예 기법까지 반영하는 데 있다. 물랭은 일부 복원 프로젝트에서 봐온 조악한 작업 방식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가장 흔한 사례는 기계식 톱으로 건축용 석재들을 완벽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다음 전동 공구로 표면을 긁어 오래된 것처럼 가공하는 것이다. 2019년 화재 이후 노트르담 대성당을 복원할 때도 이 같은 방식이 사용됐다. 물랭은 이런 방식을 아주 못마땅해한다.
중세의 교회 건축가들은 모든 돌덩이를 손으로 직접 다듬었으며 눈에 띄지 않는 부분에는 괜히 힘을 낭비하지 않았다. 돌덩이의 반대쪽 면은 벽 안쪽을 향했기 때문에 다듬지 않은 울퉁불퉁한 상태로 남겨뒀고 네 옆면은 큰 끌로 대강 형태만 잡은 다음 모르타르를 발라 이웃한 돌들과 접합했다.
보티노와 물랭은 새 첨탑이 바로 이런 느낌을 풍기기를 바란다. 중세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활용 가능한 현실적인 방식을 동원해 끌 자국이 남아 있는 당시의 외관을 구현해내겠다는 것이다. 전기톱 사용은 금지돼 있지만 새로운 첨탑에 쓰일 1만 5200개의 석재 중 85%는 외부 작업장에서 공압식 소형 끌로 절삭할 예정이다. 나머지 15%의 석재는 생드니 대성당에 있는 작업장에서 오로지 수작업으로만 깎아낼 계획이다.

공사 현장이 공개되기 다섯 달 전인 5월의 어느 멋진 봄날, 나는 보티노와 함께 비계 위로 올라갔다. 남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광장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우리는 생드니 대성당 앞 광장을 내려다봤다. 텅 비어 있었다. 광장의 돌바닥에는 사라진 첨탑의 모습이 파란색과 흰색의 스텐실로 축제 분위기가 물씬 나게 그려져 있었다. 머지않아 새로운 첨탑 뒤편으로 해가 떠오르면 바로 이 광장에 다시금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