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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지배하는 땅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황금양털 이야기의 무대인 흑해 연안 지방에는 이교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며 전통을 고수해온 민족들이 살고 있다.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간직해온 이들을 만나본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동쪽으로 가다보니 나무도 사라지고, 전화기도 사라지고, 예수도 없다. 터키의 흑해 연안을 따라 카프카스 지방까지 뻗어 있는 산을 오르다보면 모든 게 희귀해진다. 외딴 골짜기와 가파른 돌투성이 길에는 어느새 현대 문명의 자취는 사라져버리고 광활한 하늘과 엉겅퀴와 잡초만 무성한 황량한 비탈, 어두운 협곡을 세차게 흐르는 빙하 녹은 물 소리, 그리고 언제나 경외의 대상인 최초의 신들이 행사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할 뿐이다. 기원전 14세기 그리스에는 이아손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아르고호'라는 배를 만들어 세상의 끝이라고 여겼던 콜키스까지 함께 항해할 용사 50명을 모집한다. 그곳에는 결코 잠을 자지 않는다는 뱀 한 마리가 떡갈나무에 걸린 황금양털을 지키고 있는데, 아르고호 용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가져오겠다고 콜키스 왕 아이에테스에게 맹세한다. 이 맹세를 지키기 위해 서약과 제물, 사람을 해치는 주문 따위가 등장했고,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 포함된다. 터키 동부 흑해 연안에 형성돼 있는 좁고 긴 평원에서의 삶은 세월과 더불어 현대화되면서 사고방식도 바뀐 반면, 그 너머 험준한 산맥이 자리잡고 있는 터키 동부와 그루지야의 오지는 까마득히 먼 과거에 머물러 있다. 터키의 라즈족·헴신족·쳅니족·룸족에서부터 그루지야의 스반족·투시족·헤브수르족에 이르기까지 이곳 산악지방에 사는 민족들은 언어와 의복은 서로 다르지만 역사의 뿌리는 공유한다. 이들 세계에서는 아직도 신성한 명예, 희생 제물, 복수 따위가 엄연히 존재하며 가축 돌보기와 여성의 육체노동이 일상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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