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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이방인들

글 : 필 자브리스키 사진 : 스티브 매커리

지리적·종교적으로 고립되고 탈레반으로부터 박해를 받아온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심장부에는 텅 빈 공간이 하나 있다. 한눈에도 허전해 보이는 이곳은 한때 거대한 바미안 석불들이 서 있었던 자리다. 2001년 3월, 탈레반은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석불들을 향해 로켓탄을 쏘아대더니 결국 석불 안에 폭발물을 설치해 파괴해버렸다. 불상들은 1500년 넘게 바미안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그동안 실크로드 무역상들과 여러 종교의 선교사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몽골, 사파위, 무굴, 영국, 소련 등 다양한 제국의 사절들도 툭하면 유혈사태를 일으키며 이곳을 지나갔다. 그러던 중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하는 한 나라가 등장했다. 이곳에 여러 차례 정권이 들어섰다가 붕괴되거나 전복되었다. 그 와중에도 석불들은 늘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이 보기에 불상은 단순히 돌로 만든 우상이자 비이슬람적인 것이었다. 전 세계가 그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해도 개의치 않았다. 한층 더 고립되는 것도 겁내지 않았다. 불상 파괴는 역사와 문화보다도 자신들의 신앙을 우선시하겠다는 종교적 독단 행위였다.
더군다나 이는 불상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인 하자라족에 대한 지배력을 과시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그들은 ‘하자라자트’로 알려진 이곳 아프가니스탄 중앙 고원의 외딴 지역에 살고 있다. 하자라자트는 그들이 선택한 땅은 아니지만 하자라족의 심장부다. 하자라족은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최고 20%나 차지하는데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방인이었다. 수니파 이슬람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 나라에서 하자라족은 대부분 시아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근면성실하기로 유명하지만 대개 미천한 일을 한다. 가는 눈, 낮은 코, 넓은 광대뼈 등 아시아인 특유의 이목구비 때문에 실상 하층민 취급을 받아왔다. 열등하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일부 하자라인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정도다.
탈레반은 대개 파슈툰족 출신의 수니파 원리주의자들로, 하자라족을 이단자나 동물, 심지어 그보다 못한 존재로 여겼다. 이들은 생김새도 아프간인과 다르고 예배드리는 방식도 이슬람교도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비(非)파슈툰계 소수민족들에 관한 탈레반 속담에 “타지크족은 타지키스탄으로, 우즈베크족은 우즈베키스탄으로, 하자라족은 ‘고리스탄(무덤)’으로”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불상을 파괴할 당시 탈레반은 하자라자트를 포위하고는 이 지역에 사람이 못 살게 하려고 마을들을 불태웠다. 가을이 오자 하자라자트 주민들은 당장 겨울을 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런데 먼 타국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9·11 사태가 하자라 사람들을 구했다.
탈레반이 축출되고 6년이 지났지만 하자라족의 고향 땅인 이곳 고원에는 여전히 분쟁의 상흔이 남아 있다. 하지만 10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미래에 대한 희망의 기운도 감돌고 있다. 현재 이곳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 중 하나다. 다른 지역을 뒤덮고 있는 양귀비 밭이 이곳에는 거의 없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중앙 정부가 있는 카불에는 새로운 정치 질서가 들어섰다. 하자라족은 오랫동안 허용되지 않았던 대학 입학이나 공무원 등 다른 직종으로의 진출이 가능해졌다. 부통령 중 한 사람도 하자라족 출신이며 의회에서 득표율이 가장 높은 의원과 이 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주지사 역시 하자라족 출신이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소설로 현재 영화로도 제작 중인 ‘연을 쫓는 아이’는 한 가공의 하자르인 인물을 내세우고 있으며, 아프간판 ‘아메리칸 아이돌’인 ‘아프간 스타’에서 첫 번째 스타의 자리를 차지한 것도 하자라인이었다.
수십 년에 걸친 내란이 종식되고 아프간에서 국가 재건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자라자트가 하자라족뿐 아니라 모든 아프간인들에게 변화와 성장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어두운 기억들, 그리고 지연되는 도로 건설, 탈레반의 부활,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의 부상 등 희망의 불씨를 짓누르는 현재의 정세를 보면 낙관만 할 수는 없다.
현재 바미안 석불의 파편들을 끌어 모아 재건하려는 사업이 한창이다. 하자라족도 산산조각난 과거를 추슬러 다시 일어서려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파괴된 석불을 복원하는 데는 참고할 만한 사진이나 있지만 자유와 번영을 구가해본 적이 없는 하자라족은 박해에서 벗어난 자신들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는 점이다.
무사 샤파크(28)는 그런 미래를 꿈꾸는 사람 중 하나다.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그는 불상의 모습과 꼭 닮은 전형적인 하자라족 외모를 지니고 있다. 빨간 스웨터에 검정색 진을 입고 도수 있는 선글라스를 낀 채 카불대학교 정문 앞에 서 있는 그는 두 달 뒤면 졸업을 한다. 이 나라의 불안정한 정국을 감안하면 어떤 아프간인보다도 성공한 셈이다. 게다가 하자라족 출신인 그의 성공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호탄과도 같다. 샤파크는 과수석으로 졸업하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 그래야 바라던 대로 카불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자라족 젊은이들은 교육 수준도 높고 아주 열정적이며 진취적입니다. 새로운 상황이 가져다준 기회를 잘 포착하고 있지요.” 유럽연합의 아프가니스탄 특사 보좌관인 아일랜드 출신의 마이클 셈플은 말한다. 샤파크는 회원 150명의 하자라 학생 조직 ‘다이얼로그센터’의 설립을 돕기도 했다. 이 단체는 자체 간행물을 발행하고 ‘인권과 문화적 다원주의’를 증진시키는 행사도 주최하며 인권단체들과 함께 선거 감시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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